매운 떡볶이나 불닭을 먹고 입안이 불타오를 때,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은 차가운 물입니다.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시면 순간적으로는 시원해지는 것 같지만, 컵을 내려놓자마자 더 큰 고통이 밀려오는 경험을 해보셨을 겁니다. 혀는 더 따갑고 입안의 화끈거림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왜 물은 매운맛을 없애주지 못할까요?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이 가진 화학적 성질 때문입니다. 매운맛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무작정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캡사이신을 과학적으로 분해하고 씻어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캡사이신의 비밀과, 불난 입안을 확실하게 진압해 줄 진짜 소화기들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소개합니다.
Shutterstock
1.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먼저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은 혀의 미뢰가 느끼는 미각이지만, 매운맛은 미각이 아닌 통각, 즉 고통입니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Capsaicin)이라는 화학 물질은 혀 표면에 있는 TRPV1이라는 수용체에 달라붙습니다. 원래 이 수용체는 43도 이상의 뜨거운 열을 감지해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캡사이신이 이 수용체와 결합하면, 뇌는 실제로는 뜨겁지 않은데도 입안이 불에 타고 있다고 착각하여 비상경보를 울립니다. 우리가 땀을 흘리고 심장이 뛰는 것은 뇌가 열을 식히려고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2. 물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이유: 기름과 물의 관계
매운 것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은, 삼겹살 기름이 잔뜩 묻은 프라이팬을 찬물로만 헹구려는 것과 같습니다.
캡사이신은 무극성 분자입니다. 쉽게 말해 물보다는 기름과 친한 지용성(Lipophilic)이자, 물을 밀어내는 소수성(Hydrophobic) 물질입니다.
물로 씻어내려 하면: 캡사이신은 물에 녹지 않습니다. 물을 마시면 캡사이신이 씻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물과 섞이지 않은 채 입안 전체로 널리 퍼져버립니다. 결과적으로 입안의 더 많은 수용체에 캡사이신이 달라붙게 되어 고통의 범위가 넓어집니다. 얼음물의 차가운 온도가 잠시 통증을 마비시킬 수는 있어도, 물을 삼키고 나면 더 강력한 매운맛이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3. 확실한 진화법: 캡사이신을 녹이는 것들
화학 원리에 따르면, 지용성인 캡사이신을 떼어내려면 똑같이 기름 성분이거나, 캡사이신을 녹여낼 수 있는 물질을 사용해야 합니다.
(1) 우유와 유제품 (가장 확실한 소화기)
매운 음식 쿨피스 조합이나 우유가 효과적인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유에는 카제인(Casein)이라는 단백질이 들어있습니다. 원리: 카제인 분자는 세제(비누)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한쪽은 캡사이신(기름)을 잡고, 다른 한쪽은 물을 잡아서 캡사이신을 혀의 수용체에서 떼어내 씻어 내려줍니다. 팁: 저지방 우유보다는 유지방이 풍부한 일반 우유가 더 효과적입니다. 요구르트나 아이스크림도 훌륭합니다.
(2) 밥이나 빵 (물리적 제거와 흡수)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나 빵을 씹는 것도 좋습니다. 원리: 탄수화물(전분)은 물리적으로 혀 표면을 긁어내어 캡사이신을 제거하고, 스펀지처럼 캡사이신 성분을 흡수해 줍니다. 입안에 머금고 씹다가 삼키면 통증이 빠르게 줄어듭니다.
(3) 기름진 음식 (마요네즈, 올리브유)
이열치열, 아니 이유(油)치유입니다. 캡사이신은 기름에 녹습니다. 원리: 입안이 너무 매울 때 마요네즈를 조금 먹거나, 기름진 튀김 등을 먹으면 캡사이신이 음식의 기름 성분에 녹아 혀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4) 설탕물이나 꿀
아주 진한 설탕물이나 꿀 한 숟가락을 입에 머금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원리: 고농도의 당분은 뇌에 강렬한 쾌락 신호를 보내 통증 신호를 상쇄시키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캡사이신이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요약: 매운맛 응급처치 매뉴얼
앞으로 매운 음식에 도전하다가 한계에 부딪힌다면, 물컵 대신 냉장고의 우유를 꺼내세요.
물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지만, 우유 속의 카제인은 기름때를 씻어내는 비누처럼 여러분의 혀를 캡사이신의 고통에서 부드럽게 씻어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