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큰맘 먹고 비싼 소고기를 사서 스테이크를 구웠을 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잘 구워진 것 같아 뿌듯한 마음에 접시에 옮겨 바로 칼을 댄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칼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육즙이 흥건하게 쏟아져 나와 접시가 피바다처럼 변하고, 정작 입에 넣은 고기는 퍽퍽하고 질겼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이것을 ‘고기가 덜 익어서 피가 나오는 것’이라고 오해하여 다시 팬에 굽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덜 익은 것이 아니라, 스테이크 조리의 마지막 단계인 ‘레스팅(Resting)’을 생략했기 때문에 발생한 참사입니다.
스테이크 맛의 50%는 굽는 기술에서, 나머지 50%는 기다림에서 나옵니다. 오늘은 왜 갓 구운 스테이크를 바로 자르면 안 되는지, 그 5분의 기다림 동안 고기 내부에서 어떤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해 드립니다.
1. 고기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 젖은 스펀지 이론
스테이크용 고기는 수분을 가득 머금은 근육섬유 다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물에 젖은 스펀지’라고 상상해 봅시다.
고기를 뜨거운 팬에 올리면, 열을 받은 근육섬유는 급격하게 수축하고 단단해집니다. 마치 젖은 스펀지를 손으로 꽉 쥐어짜는 것과 같습니다.
- 굽는 중: 표면의 수분은 열에 의해 증발하지만, 내부의 육즙은 수축하는 근육에 떠밀려 갈 곳을 잃고 고기의 가장 중심부(가장 온도가 낮은 곳)로 몰리게 됩니다.
- 바로 잘랐을 때: 이때 칼을 대면, 중심부에 갇혀있던 엄청난 압력의 육즙이 댐이 무너지듯 절단면으로 일시에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접시 위에 고이는 흥건한 붉은 액체의 정체입니다.
결과적으로 육즙은 모두 접시로 빠져나가고, 여러분이 먹는 고기는 수분이 빠진 스펀지처럼 건조하고 퍽퍽한 섬유질만 남게 됩니다.
2. 레스팅(Resting): 육즙을 다시 가두는 시간
‘레스팅’은 다 구운 고기를 따뜻한 곳에 5분에서 10분 정도 가만히 두는 과정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고기 내부에서는 육즙을 지키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 1: 근육의 이완과 육즙의 재배치
불에서 내려진 고기는 서서히 온도가 낮아지면서, 긴장하고 수축했던 근육섬유들이 다시 느슨하게 이완됩니다. 이때 중심부에 몰려있던 육즙이 이완된 근육 사이사이로 다시 골고루 퍼져나갑니다. (Redistribution). 레스팅이 끝난 고기를 자르면 육즙이 쏟아지지 않고, 고기 단면 전체가 촉촉한 분홍빛을 띠며 육즙을 머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변화 2: 육즙 점도의 변화
뜨거운 상태의 육즙은 물처럼 묽어서 쉽게 흐릅니다. 하지만 레스팅을 통해 온도가 살짝 내려가면 육즙은 조금 더 진득한 점성을 가지게 됩니다. 이 덕분에 고기를 씹었을 때 육즙이 밖으로 새지 않고 입안에서 풍부하게 터지게 됩니다.
3. 올바른 레스팅 방법
레스팅은 단순히 방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가 식어버리지 않게 하면서 내부 안정을 유도해야 합니다.
- 시간: 고기의 두께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3cm 두께의 스테이크라면 약 5분에서 7분 정도가 적당합니다.
- 방법 (포일 텐트): 접시에 고기를 옮겨 담고, 알루미늄 포일을 고깔 모양으로 만들어 고기 위를 가볍게 덮어줍니다. (텐트처럼 공간을 띄워야 합니다.)
- 주의: 포일로 고기를 너무 꽁꽁 싸매면 내부 습기가 차서, 애써 만든 고기 겉면의 바삭한 크러스트(Crust)가 눅눅해질 수 있습니다. 공기가 통할 정도로 살짝만 덮어 온기를 유지하세요.
- 잔열 조리 (Carry-over Cooking): 레스팅하는 동안에도 고기 내부 온도는 잔열에 의해 2~5도 정도 더 올라갑니다. 따라서 미디엄으로 먹고 싶다면, 팬 위에서는 미디엄 레어 상태일 때 꺼내야 레스팅 후 완벽한 미디엄이 됩니다.
최고의 스테이크를 만드는 비결은 ‘인내심’입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고소한 냄새가 당장 칼을 들고 싶게 만들더라도, 잠시만 참으세요.
고기에게 휴식을 주는 그 5분의 시간이, 접시 위의 핏물을 고기 속의 풍부한 육즙으로 바꾸어 줄 것입니다. 레스팅을 거친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는 순간, 여러분은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바로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