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 레시피를 열었을 때, 재료 목록 첫 줄에 있는 ‘밀가루’ 앞에서 막막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마트의 베이킹 코너에는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 등 비슷해 보이는 하얀 가루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많은 초보 베이커가 “다 같은 밀가루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집에 있는 것을 사용했다가, 케이크가 떡처럼 나오거나 빵이 돌처럼 딱딱하게 나오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합니다.
밀가루의 선택은 베이킹의 성패를 결정짓는 첫 번째 단추입니다. 이들의 차이점은 단 하나, 바로 ‘단백질(글루텐) 함량’에 있습니다.
오늘은 이 세 가지 밀가루가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왜 그 차이가 중요한지, 그리고 각각의 용도에 맞게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완벽하게 비교 분석해 드립니다.
밀가루를 구분하는 단 하나의 기준: ‘단백질(글루텐) 함량’
밀가루의 종류를 나누는 절대적인 기준은 밀가루가 포함하고 있는 ‘단백질의 함량’입니다.
이 단백질은 물과 만나 섞이고 치대는 과정(반죽)을 거치면, ‘글루텐(Gluten)’이라는 그물망 구조를 형성합니다. (5번 글 ‘글루텐 가이드’ 참고)
이 ‘글루텐’은 반죽에 탄력과 점성을 부여하며, 빵이나 과자의 ‘뼈대’ 역할을 하고 ‘쫄깃한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 단백질 함량이 높다 = 글루텐이 강하고 많이 형성된다 = 쫄깃하고 튼튼한 식감
- 단백질 함량이 낮다 = 글루텐이 약하고 적게 형성된다 = 바삭하고 부드러운 식감
이 원리에 따라 밀가루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밀가루 3종 완벽 분석 및 핵심 용도
1. 강력분 (Bread Flour)
- 단백질 함량: 높음 (약 12~14%)
- 특징: 이름 그대로 글루텐의 힘(탄성)이 가장 강력한 밀가루입니다. 물을 흡수하는 능력이 좋고, 반죽했을 때 매우 튼튼하고 신축성 좋은 글루텐 막을 형성합니다.
- 핵심 역할: 이 튼튼한 글루텐 막이 효모(이스트)가 만들어내는 가스(이산화탄소)를 가두어 빵이 풍선처럼 잘 부풀어 오르게 합니다. (이를 ‘발효’라고 합니다.)
- 결과물 식감: 글루텐이 뼈대를 단단히 잡아주어, 부피가 크고 속결이 쫄깃쫄깃한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 주요 용도: 효모(이스트)를 사용해 발효시키는 거의 모든 ‘빵’ 종류.
- (예: 식빵, 바게트, 베이글, 피자 도우, 모닝빵 등)
2. 박력분 (Cake Flour)
- 단백질 함량: 낮음 (약 7~9%)
- 특징: 글루텐의 힘이 가장 약한 밀가루입니다. 단백질 함량이 낮아 글루텐 형성이 최소화됩니다.
- 핵심 역할: 글루텐이 적게 형성되어야 하는, 즉 ‘쫄깃함’이 아닌 ‘바삭함’이나 ‘가벼움’이 중요한 레시피에 사용됩니다. 반죽을 섞을 때 글루텐이 쉽게 생기지 않아 재료가 뭉치는 것을 막아줍니다.
- 결과물 식감: 글루텐의 저항이 없어 매우 가볍고, 부드럽고, 폭신하거나(케이크), 바삭한(쿠키)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 주요 용도: 베이킹 파우더나 달걀 거품으로 부풀리는 대부분의 ‘과자’ 및 ‘케이크’ 종류.
- (예: 케이크 시트(제누와즈), 카스텔라, 쿠키, 스콘, 파운드케이크, 타르트지, 머핀)
- (팁: 튀김 요리를 할 때 박력분을 쓰면 튀김옷이 훨씬 바삭해집니다.)
3. 중력분 (All-Purpose Flour)
- 단백질 함량: 중간 (약 10~12%)
- 특징: 강력분과 박력분의 중간 성질을 가진, 말 그대로 ‘다목적(All-Purpose)’ 밀가루입니다.
- 핵심 역할: 적당한 글루텐 형성이 필요할 때 사용됩니다. 강력분만큼 강하지도, 박력분만큼 약하지도 않아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습니다.
- 결과물 식감: 적당히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균형 잡힌 식감을 냅니다.
- 주요 용도: 주로 한식 요리에서 많이 사용되며, 일부 베이킹에도 쓰입니다.
- (예: 칼국수, 수제비, 만두피, 부침개 등)
- (베이킹 예: 스콘, 일부 쿠키 레시피에서 ‘중력분’을 지정하는 경우)
Q&A: 초보자가 가장 많이 묻는 질문
Q1. 레시피에 그냥 ‘밀가루’라고만 적혀있으면 어떡하죠?
레시피의 문맥을 확인해야 합니다.
- ‘이스트’가 들어가고 ‘발효’ 과정이 있다면? -> 강력분
- ‘베이킹 파우더’가 들어가거나 ‘버터와 설탕을 섞는’ 과정이 있다면? -> 박력분
- 만약 해외(미국) 레시피를 번역한 것이라면 ‘All-Purpose Flour’, 즉 ‘중력분’을 의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일반적인 홈베이킹 레시피(쿠키, 케이크)는 대부분 ‘박력분’을 기본으로 합니다.
Q2. 빵 만드는데 강력분이 없어요. 중력분으로 대체해도 되나요?
가능은 하지만, 추천하지 않습니다. 중력분은 강력분보다 글루텐의 힘이 약합니다. 따라서 이스트가 가스를 만들어도 그것을 붙잡는 힘이 부족하여, 빵이 충분히 부풀지 않고(부피가 작고), 쫄깃한 식감 대신 다소 푸석하거나 밀도 높은 빵이 될 수 있습니다.
Q3. 쿠키 만드는데 박력분이 없어요. 중력분으로 대체해도 되나요?
역시 추천하지 않습니다. 중력분은 박력분보다 글루텐이 더 많이 형성됩니다. (4번 글 ‘쿠키가 딱딱해지는 이유’ 참고) 반죽을 섞을 때 글루텐이 생겨, 완성된 쿠키가 바삭하거나 부드럽지 않고, 어딘가 질기거나 딱딱한 식감이 될 수 있습니다.
Q4. 밀가루 보관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밀가루는 습기, 냄새, 벌레에 매우 취약합니다.
- 밀봉: 사용 후에는 봉투 입구를 잘 밀봉하거나, 별도의 밀폐 용기에 담아야 합니다.
- 서늘하고 건조한 곳: 습기와 온도가 높은 곳은 피하고, 서늘하고 건조한 상온에 보관합니다.
- 냄새 분리: 밀가루는 주변의 냄새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입니다. 향이 강한 식재료(커피, 향신료 등)와 반드시 분리해서 보관해야 합니다.
- 장기 보관 시에는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제 마트에서 어떤 밀가루를 집어야 할지 명확해졌을 것입니다.
밀가루의 종류를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은 레시피의 지도를 정확하게 읽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쫄깃한 뼈대가 필요한 ‘빵’이라면 ‘강력분’을, 가볍고 부드러운 식감이 중요한 ‘케이크’나 ‘과자’라면 ‘박력분’을 선택하는 것.
이 간단한 원칙 하나만 기억해도 여러분의 베이킹 실패 확률은 절반으로 줄어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