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씨가 제일 맵다는 건 착각이다? (캡사이신의 진짜 위치)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은 고추를 썰 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 있습니다. 바로 고추를 반으로 가른 뒤, 안에 들어있는 하얀 씨앗들을 필사적으로 털어내는 것입니다. “고추는 씨가 제일 매우니까, 씨만 빼면 안 매울 거야”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국물 요리를 얼큰하게 만들고 싶을 때는 고추씨를 일부러 모아서 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식물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완전히 헛수고를 한 셈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거나 사랑하는 매운맛의 원천인 ‘캡사이신(Capsaicin)’은 씨앗 속에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고추의 해부학을 통해 매운맛의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요리할 때 맵기를 조절하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1. 매운맛의 진짜 범인: ‘태좌(Placenta)’

고추를 세로로 갈라보면 구조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 과피: 겉을 감싸고 있는 초록색/빨간색 껍질 (고추 살)
  2. 종자: 동글동글하고 납작한 씨앗
  3. 태좌(胎座): 씨앗이 붙어 있는, 고추 정중앙의 하얀색 심지(스펀지 같은 조직)

많은 사람이 씨앗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캡사이신을 만들어내는 공장은 바로 하얀색 심지인 ‘태좌’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고추 전체 캡사이신 함량의 약 90% 이상이 이 태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껍질(과피)에는 소량만 들어있고, 놀랍게도 씨앗 자체에는 캡사이신이 거의 없습니다.

2. 고추씨는 억울하다 (묻어있는 것일 뿐)

“어? 아닌데? 고추씨 씹었을 때 엄청 맵던데?”라고 반문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고추씨를 먹으면 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씨앗 자체가 매워서가 아니라, 씨앗이 매운 태좌(심지)에 딱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양념 치킨 소스 속에 들어있는 땅콩과 같습니다. 땅콩(씨앗) 자체가 매운 것이 아니라, 겉에 묻은 양념(태좌의 캡사이신) 때문에 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태좌에서 완벽하게 분리하여 씻어낸 고추씨를 씹어보면, 매운맛은 거의 없고 오히려 콩처럼 고소하고 쓴맛이 납니다.

3. 요리 꿀팁: 맵기 조절의 핵심은 ‘하얀 심지’

이 사실을 알면 요리할 때 매운맛을 훨씬 더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1) 덜 맵게 먹고 싶다면?

씨만 털어내는 것은 하수입니다. 씨를 털어내도 하얀색 심지가 고추 내벽에 그대로 붙어있다면 매운맛은 거의 줄어들지 않습니다.

  • 방법: 고추를 세로로 가른 뒤, 칼끝이나 작은 숟가락을 이용해 하얀색 줄기(심지) 부분을 껍질에서 완전히 긁어내세요. 껍질(초록색 부분)만 남기면 청양고추조차도 피망처럼 아삭하고 덜 맵게 즐길 수 있습니다.

(2) 더 맵게 먹고 싶다면?

매운맛을 내려고 고추를 송송 썰어 넣었는데 생각보다 안 맵다면? 하얀 심지를 버리고 껍질만 넣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 방법: 고추를 썰 때 하얀 심지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심지어 심지만 따로 긁어 모아서 국물에 넣으면 소량으로도 폭발적인 칼칼함을 낼 수 있습니다. 고추기름을 낼 때도 이 부분을 꼭 활용해야 합니다.

4. 고추씨, 버려야 할까? (영양학적 가치)

씨앗이 맵지 않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추씨는 영양 덩어리입니다.

  • 불포화 지방산: 고추씨에는 몸에 좋은 지방산이 풍부합니다.
  • 항암 성분: 캡사이신 외에도 항암 효과가 있는 성분들이 들어있습니다.
  • 감칠맛: 잘 말린 고추씨는 육수를 낼 때 넣으면 구수하고 깊은 감칠맛을 냅니다. 백김치나 동치미를 담글 때 고추씨를 넣는 이유가 바로 이 시원하고 고소한 맛 때문입니다.

요약

  1. 진실: 고추씨는 맵지 않다. 매운 건 씨가 붙어있던 ‘하얀색 심지(태좌)’다.
  2. 덜 맵게: 씨만 털지 말고, 하얀 심지를 칼로 도려내라.
  3. 더 맵게: 하얀 심지를 절대 버리지 마라.

앞으로 고추를 손질할 때는 씨앗과 씨름하지 마세요. 칼끝으로 하얀 심지를 얼마나 남기고, 얼마나 긁어내느냐가 오늘 식탁의 맵기를 결정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